최근의 한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이성주 (국어국문학과 3학년)

황룡학술문학상 문학부문 평론 가작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14살 때, 『연금술사』라는 책을 만났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어느 날, 운명처럼, 도서관에서 『연금술사』를 만났다. 그때부터였다. 『연금술사』에서 받은 감동을 도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랐기에 무작정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연이어 읽었다. 그야말로 『연금술사』에 매혹되었다. 『연금술사』는 간단하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이야기였고, 이해하고 싶지만 다 이해할 수 없었던 거대한 물음표였다. 나는 『연금술사』를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답을 찾게 되면서부터는 『연금술사』는 내게 더욱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다시 말해, 나에게 『연금술사』는 글자 하나부터 마침표까지 거대한 신화였다.

그 중에서 정말 좋아하는 부분을 뽑자면, 단연 산티아고가 길을 떠나는 장면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그야말로 맹목적으로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산티아고의 열정이 좋았다. 산티아고는 ‘피라미드를 보고 싶다.’라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키우던 양들을 모두 팔고는 무작정 이집트로 향한다. 산티아고의 행동은 한결같았다. 어떤 시련과 유혹이 찾아와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산티아고를 닮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그 날부터 나는 산티아고처럼 살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연금술사』는 내게 나침반 같은 책이다. 고백하건데 짧은 인생이었지만 고비도 있었고 고민도 많았다. 그 만큼 선택할 것도 많았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무엇이 되고자 했던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청소년기 내내 꿈꿔왔던 것이 있었지만 준비하는 과정도 꿈을 이루고 난 후에도 도무지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즐겁지 않았다. 숱한 시련과 유혹을 이겨낼 가치를 찾지 못했다. 그때 나는 꿈을 잃었고 불행했다. 도대체 산티아고의 꿈처럼 순수한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한 동안 책을 쌓아놓고 밤새 읽기만 했다. 책 속에 빠져들어서 정신없이 읽다보면 수시로 해가 떴고, 피곤에 지쳐서는 잠들었다. 대하장편소설을 이틀 만에 읽어내며 공허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할 때는 내내 고통스러웠고, 힘들었다. 그런데 어쩌면 ‘꿈’이라는 것이 산티아고가 꿈꿨던 것처럼 터무니없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을 하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이때 산티아고를 기억했다. 모두가 원하는 것, 편안한 삶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아의 신화’을 이루는 삶. 그것이 내가 이루어야 할 운명적인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작가의 삶을 소망했다. 무모하게 보일지라도 내 인생은 오직 ‘그것’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더군다나 『연금술사』에 어느 늙은 왕이 산티아고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라고. 또한, 산티아고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바람을 부러워하다가 문득 깨닫지 않았던가. 자신 역시도 바람과 같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을. 결국, 우리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내가 누리고 있는 ‘안정된 삶’을 잃을까하는 불안이다. 그 불안을 떨치고 산티아고처럼 마음이 이끄는 대로 무작정 떠난다면 이미 꿈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 믿음으로 나는 친구들에게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선물하곤 한다. 부디, 각자의 피라미드를 찾아가길 바라면서, 이 한 권의 책이 또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리라는 기대를 갖고 말이다.

『연금술사』를 처음 만난 14살 때부터 내 책상에는 일러스트 한 장이 붙어 있다. 피라미드를 바라보는 산티아고가 그려진 이 그림은 내가 피라미드로 가는 방향을 잊지 않도록 해준다. 이 나침반을 갖고 시작된 여행은 한 걸음씩 피라미드로 향하고 있다. 이처럼 내 인생을 바꿔놓은 『연금술사』의 마법은 여전히 강력하게 내 삶을 움직이고 있다. 혹시나 그 꿈에 닿지 못한다할지라도, ‘이 여행’이 충분히 값어치 있다는 확신을 하고 있으니 두렵지 않다. 나는 앞으로도 든든한 길동무 산티아고와 함께 걸어 갈 것이다. 누군가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거다. “나는 피라미드로 가고 있소.” 좋은 친구와 여행을 하고 있으니 나는 늘 행복하다. 그러니 부럽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