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으로 읽는 영화

송해성 감독 ｢고령화 가족｣

 

송해성 감독의 <고령화가족>을 봤다. 크게 세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배우들의 연기력. <살인의 추억>, <괴물>, <이끼>, <은교>에서 만났던 박해일이나 <바람난 가족>, <돈의 맛>에서 숨죽이며 지켜봤던 윤여정의 연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본격적으로는 처음 보는 윤제문과 공효진의 연기 또한 범상치 않았다. 그들 역시 ‘연기의 달인’ 혹은 ‘연기의 신’이라 할 만했다. <고령화가족>의 원작인 천명관의 『고령화가족』을 같이 읽어본 독자라면 잘 알겠지만, 윤제문이 분한 ‘오한모(일명, 오함마)’나 ‘오미연’은 도대체가 지나치리만큼 복합적인 인물이고 또 그런 만큼 한마디로 축약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성적인 인물들이어서 사실 그 캐릭터들을 구현해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인물들이다. ‘오한모’는 ‘오함마’란 별명에서 볼 수 있듯 육체적으로 ‘하마’에 가깝고 ‘함마든 (전직) 깡패’이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의리’를 보여준 피가 덜 섞인 가족들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희생하는 ‘친절한 함마(?)씨’이기도 한 인물이고, ‘오미연’은 ‘아는 언니’들의 도움으로 알듯말듯한 카페를 운영하며 자신을 욕망하는 사람들의 순정에 그때그때 빠져들어 수없는 소문과 ‘불륜’의 관계를 양산하는 한편 ‘콩가루’에 가까운 오빠들에게 싸움꾼처럼 달려들지만 그들을 위해 보이지 않게 자기를 희생하는 인물이 아닌가. 도대체가 간단하지가 않은 캐릭터들인 것이다. 한데, 윤제문과 공효진은 이들 인물을 천연덕스럽고 자연스러우며 태연하게 연기해낸다. ‘장하다! 윤제문. 멋지다!! 공효진’ 할 밖에.

<고령화가족>을 보며 인상적이었던 또 하나의 사실은 천명관의 원작 『고령화가족』이 대단히 영화적인 소설이었음을 뒤늦게 발견했다는 점이었다. 사실 영화 <고령화가족>은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원작에 대단히 충실한 영화라 할 만했다. 그렇게 원작에 충실했는데도 <고령화가족>은 훌륭한 영화가 되고 만 셈이니, 이는 원작이 이미 충분히 영화적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일 터이다. 이제까지는 나는 천명관의 소설을 만날 때마다, 예컨대 『고래』, 『유쾌한 하녀 마리사』, 『나의 삼촌 브루스 리』 등을 읽으면서, 그의 소설이 돌연변이이며 이종이라고는 환대해 왔으나, 그러나 그 원천 중의 하나가 영화적 감수성과 문법, 그리고 미장센에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그랬던 것인데, <고령화가족>을 보고나니 그것을 알겠다. 천명관 소설의 힘은 영화적 감수성과 미장센 그리고 소설 특유의 이야기성과 내면묘사가 자의적으로, 그리고 기묘하게 결합한 것에 있었다는 것.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러한 뒤늦은 각성은 좀 어이없는 것이기도 하다. 문학판에서 천명관이 영화판에 있다가 왔다는 것을 제일 먼저 전해 들었던 것은 나 아니던가. 천명관의 『고래』를 맨 처음 읽었다는 인연 때문에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천명관의 이력, 그중에서도 영화판에 대한 이력 때문에 신기해했던 것은 딴 사람이 아닌 나였다. 『고령화가족』의 천명관은 사실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직장 일선에 뛰어들어 건전한 생활인으로 살다 군대에 다녀와서 갑자기 영화 쪽으로 삶의 방향을 틀어, <북경반점>을 비롯 <이웃집남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편의 각본을 썼으며 소위 ‘입봉’을 위해 충무로 근처를 전전했던 사내가 바로 천명관이다. 그러다가 영화판에 한계를 느끼고 또 한 차례의 방향전환을 시도 문학판으로 뛰어들었고 21세기 한국소설의 미래라는 평가를 받으며 순식간에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이 역시 천명관이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건만 왜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의 소설의 특이성이 영화와 깊은 관련이 있을지를 떠올리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영화판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그 판에 어울리지 않는 문학적 감수성 때문이고, 그런 마당에 문학판으로 들어선 만큼 영화판의 감각과는 소매 나누 듯 결별했으리라는 선입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영화 <고령화가족>을 통해 천명관의 소설을 보다 정교하게 읽어낼 어떤 통로 혹은 실마리를 잡게 되었고 이것은 영화 <고령화가족>이 나에게 안겨준 기대 외의 선물이었다.

<고령화가족>이 나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마지막 대목은 천명관의 소설 『고령화가족』이 그만큼 영화와 친연성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영화 <고령화가족>과 소설 『고령화가족』은 여러 면에서, 그것도 결정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었다. 물론 영화 <고령화가족>과 소설 『고령화가족』의 가장 큰 차이는 영화 <고령화가족>이 의도적으로 소설 『고령화가족』을 엔딩 부분을 의도적으로 대폭 수정한 까닭에 생겨난 것이다.  영화 <고령화가족>은 소설 『고령화가족』의 엔딩을 따르는 대신 또 다른 엔딩을 선택한다.  소설 『고령화가족』이 조카인 민경을 찾기 위해 ‘바지사장’이 된 ‘오함마’가 ‘약장수’의 돈을 떼어 먹고 동남아로 도망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반해 영화 <고령화가족>은 ‘약장수’가 동생 ‘오인모’를 잡아다 린치를 가하자 ‘오함마’가 다시 등장 자신의 다리를 희생시켜 또 다시 동생을 구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 <고령화가족>은 소설 『고령화가족』이 후일담 형식으로 처리했으나 소설의 마무리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엄마의 죽음’과 ‘오인모와 캐서린과의 재회’ 부분을 아예 영화에서 빼버리고 끝을 맺는다. 이것이 더 극적 혹은 영화적이라 생각한 까닭이리라. 헝가리의 문예학자 루카치가 말했듯 소설은 ‘과정의 총체성’을 지향한다면, 연극이나 영화는 ‘운동의 총체성’을 지향하는 특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영화 <고령화가족>의 이러한 마무리는 나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 있어서 이제까지 있어 왔던 극적 긴장 외에 또 다른 사건을 후일담처럼 늘어놓는 것은 아무래도 ‘운동의 총체성’ 측면에서는 그 총체성을 해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고령화가족>이 의도적으로 바꾼 엔딩 외에도 영화 <고령화가족>과 소설

『고령화가족』이 보이는 차이는 또 있다. 가령 다음과 같은 것이다.

건물 뒤편은 더 심각했다. 마치 밀린 임금을 못 받은 인부들이 버려두고 달아난 건물처럼 마감이 엉망이어서 울퉁불퉁한 벽에 녹슨 철근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었다. 게다가 수십 개의 가스통이 아무렇게나 방치돼 있어 빌라 건물은 마치 폭발물 벨트를 온몸에 휘감고 있는 알카에다 조직원처럼 위험하고 비장해 보였다. 그렇게 지은 지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낡은 건물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궁기와 절망은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나이 마흔 여덟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이유는 순전히 십이 년 전에 만든 한 편의 영화 때문이었다. 오랜 연출부 생활 끝에 감독으로 데뷔를 할 때만 해도, 전쟁을 치르듯 겨우 촬영을 끝내고 극장에 간판을 걸었을 때만 해도, 그 결과 일주일 만에 막을 내려 흥행에 참패했을 때도, 이어 관객이 뽑은 그해 최악의 영화로 선정됐을 때조차도 나는 내 인생이 이렇게까지 꼬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한 편의 미스터리멜로 영화였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내가 ‘말아먹은’ 것은 단지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이십억의 제작비였으며 내가 배신한 것은 순진한 관객들이 아니라 제작비를 맡긴 차갑고 영민한 제작자와 투자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배신자를 절대 잊지 않았다. 충무로의 낭인으로 십여 년을 떠도는 동안 비로소 나는 내가 실패한 것이 단지 흥행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인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장수의 표정에 잠시 당황한 빛이 스쳤다. 그는 모든 상황을 잘 이해하고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영혼은 이미 그가 생각한 상황 바깥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 왜냐하면 내가 자존심이 상했거든. 니들처럼 배운 게 없는 놈들은 잘 모르겠지만 원래 사람은 이렇게 다루면 안되는 거야. 우린 위대한 문명을 창조한 존재고 우리 스스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도록 제도를 발전시켜왔거든. 니들이 무슨 짓을 하면서 살아도 좋지만 절대로 그 사실을 잊어선 안 돼.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언어는 명료했다. - 하지만 니들은 그 사실을 망각하고 날 짐승처럼 다뤘어. 그게 얼마나 슬프고 끔찍한 일인지 너희들은 모를 거야. 그것은 단지 나 개인을 두들겨팬 게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피 흘리며 이루한 위대한 유산을 짓밟은 거야. 남대문에서 약이나 팔던 일개 양아치새끼들이 말이야. 그래서 난 네놈들에게 단 한마디로 해줄 수가 없어.

그렇다. 영화 <고령화가족>은 소설 『고령화가족』은 다음과 같은 멋진 묘사와 표현들을 전혀 영화 속에 담아내지 못한다. 단순한 풍경 묘사 하나로, 그리고 찰라적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마음의 동요에 대한 묘사 하나로 이 세상을 전혀 다른 맥락에서 읽어낼 수 있게 하는 묘사의 힘을, 소설의 힘을 결국 영화는 소화해내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소설을 한 편 읽는 것 하고 영화를 한 편 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 편의 소설을 읽고 인생을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만 영화 한 편을 보고는 취향 정도를 바꿀 수 있을 뿐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감독이나 연기자의 역량의 차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장르의 차이에서 발원하는 것이다. 묘사가 있기에, 내면 묘사가 있기에 소설은 보다 더 위대하다. 묘사가 불가능한 영화에 비해서 말이다.

영화 <고령화가족>과 소설 『고령화가족』을 같이 읽고 보자 해놓고 이렇게 소설 『고령화가족』을 일방적으로 예찬하면, 혹시 누군가가 당신은 왜 공효진이나 윤제문을 제쳐두고 천명관만을 애오라지 좋아하며, 또한 영화의 운동성이 가지는 역동성과 긴장도를 밀쳐놓고 소설의 그 지루하고 세밀한 과정만을 예찬하는가 하고 반문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거나 말거나! 영화 <고령화가족>에 대해서는 영화의 장르적 가능성을 믿는 다른 이가 또 다른 맥락으로 영화 <고령화가족>을 예찬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심지어 그런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위대한 예술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에게만 그 의미를 인정받는 소설 『고령화가족』을 집요하게 예찬하는 사람이 한 사람 있다한들 어떠하랴. 어쨌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영화 <고령화가족>을 보면서 나는 새삼 소설 『고령화가족』의 힘을, 그리고 소설 자체의 위대한 함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