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말미에 씌어진 권희철의 해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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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 김영하 지음, 문학동네.

『살인자의 기억법』의 말미에 붙은 권희철의 놀라운 해설은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라는 김영하의 문장을 끌어들이면서 시작한다. 위의 문장은 김영하가 자신의 소설 『빛의 제국』에 대해 언급하며 쓴 말로 유명한 구절인 바, 권희철은 이 문장을 끌어들이며 이렇게 말한다. ‘이 문장은 『살인자의 기억법』을 위해서 좀더 아껴뒀어도 좋았겠다’라고. 아마도 『빛의 제국』보다도 오히려 더 잘 읽히는 『살인자의 기억법』을 제대로 읽으려면 이 소설의 리듬에 마냥 빠져들어서는 안된다고, 그러면 이 소설의 참의미 및 참주제를 놓치게 될 거라는 말일 게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한 마디를 더 덧붙일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을 한 번만 읽고 말았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은 것이다”라고.

김영하의 새로운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특이한 소설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독자들에게 최소한 두 번 읽게 만드는 소설이다. 아니 『살인자의 기억법』은 반드시 최소한 두 번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읽기를 마치는 순간 우리는 소설의 앞으로 다시 돌아가서 전혀 새롭게 읽기 시작해야 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런 소설이고, 그래야 하는 소설이다. 마치 도돌이표가 붙어 있는 악보를 연주하는 것처럼. 도돌이표가 붙어 있는 노래란 반복하라면 반복해야 하며 그 반복 속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차이를 읽을 때에만 그 노래의 참의미와 참맛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단언컨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역시 소설이 끝나는 순간 처음부터 소설을 다시 읽어가며 그 반복과 차이를 읽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소설이다. 그래야만 소설 저 안쪽에서 진리를 향한 도약을 위해 웅크리고 있는 이 소설의 참주제를 만날 수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이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이 소설의 화자와 관련이 깊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전형적인 ‘믿을 수 없는 화자’의 입을 통해 사건을 서술해가는 소설이다. 그런데 『살인자의 기억법』의 화자는 믿기 힘들 정도가 아니라 전혀 믿을 수 없는 화자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화자를 믿을 수 없는 첫 번째 이유는 이 소설의 화자인 ‘내’가 연쇄살인범이고 연쇄살인범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떤 죄의식이나 죄책감 같은 것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의 삶을 세 시기로 간단하게 구분한다. “내 인생은 셋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를 죽이기 전까지의 유년. 살인자로 살아온 청년기와 장년기. 살인 없이 살아온 평온한 삶.”그리고 또 말한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날마다 살인을 생각하고 그것을 도모하던 때 아니었을까. 그때 나는 바짝 조인 현처럼 팽팽했다.” 한마디로 ‘나’는 반성하지 않는 연쇄살인마이고 오히려 현실원칙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지루하고 비루한 삶으로 바라볼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초인으로 미화하는 연쇄살인마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 속의 모든 상황은 전도되어 있으며 아이러니적이다. ‘내’가 말하는 진리는 액면 그대로 진리가 아니며, ‘내’가 말하는 선은 우리가 좇을 수 있는 그런 ‘선’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쩔 것인가, 다시 한 번 읽을 수밖에.

그러나 우리가 『살인자의 기억법』의 화자인 ‘나’를 믿을 수 없는 이유는, 그러니까 우리가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기를 마치는 순간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나’가 전혀 반성하지 않는 연쇄살인범일 뿐만 아니라 환상 속에 살고 있는 연쇄살인범이기 때문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이미 권희철이 지적한 것처럼 ‘거대한 반전’으로 끝난다. 이를 두고 권희철은 ‘남성적인 문체의 속도에 대한 완벽한 배반’이라고 이름붙이거니와, 이 ‘거대한 반전’ 혹은 ‘완벽한 배반’으로 우리는 『살인자의 기억법』의 화자를 전혀 믿을 수 없게 된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표면적인 이야기는 이렇다. 여기, 아버지를 죽이고 연쇄살인범이 된 수의사가 있다. 그는 현재 자신이 키우고 있는 딸 김은희의 부모를 죽이고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다. 사고 후유증으로 ‘살인의 유전자’를 상실하고 김은희를 키우며 살던 중 알츠하이머로 과거의 기억과 미래 기억을 상실하며 어렵사리 살아간다. 그러던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또 다른 연쇄살인범이 출현했음을 전해 듣는다. ‘나’는 그 연쇄살인범이 우연히 사고로 만난 박주태임을 확인하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고민하던 중, 박주태가 자신의 딸 은희를 노리고 접근해온다. ‘나’는 자신이 사랑하는 딸 은희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살인 혹은 최초의 ‘사냥’을 준비한다. 그런데 소설의 마지막에 가면 거대한 반전이 일어난다. 박주태는 사실은 ‘나’를 추적하던 형사이고 자신이 키웠다고 생각한 딸 은희는 ‘나’를 돌보던 요양보호사임이 밝혀진다. 게다가 ‘나’는 김은희의 부모뿐만 아니라 ‘내’가 데려다 키웠다고 믿고 있었던 김은희도 그때 이미 죽였으며 성장한 딸로 알고 있었던 요양보호사 김은희마저도 죽였음이 드러난다. 정말 거대한 반전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의 전체적인 상황이 있는 그대의 현실이 아니라 ‘나’의 상상계 속에서 이루어진 일들이라는 점이 최종적으로 밝혀지는 셈이다. 우리가 『살인자의 기억법』의 다 읽는 순간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돌아가서 어디까지가 ‘나’의 상상이고 어떤 것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를 다시 준별해야 한다. 이 과정까지 마칠 때라야 『살인자의 기억법』 읽기는 끝나며, 『살인자의 기억법』은 반드시 두 번 읽었을 때 제대로 읽은 것이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두 번 읽고 나면 『살인자의 기억법』은 연쇄살인범의 ‘사드적 농담’만이 아니라 또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중간에는 이런 이정표가 있다. “수치심과 죄책감 ;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죄책감은 있으나 수치는 없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타인의 처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수치는 느끼지만 죄책감은 없다. 타인의 시선이나 단죄는 원래부터 두렵지 않다.”는 구절. 처음 읽을 때 『살인자의 기억법』은 수치는 있지만 죄책감은 없는, 그러니까 타인의 시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초인적 악마의 후일담이자 악마적 농담으로 읽힌다.

하지만 다시 읽고 나면 이 소설은 죄책감을 견딜 수 없어 그것을 수치심으로 전도시켜 가까스로 살아간 한 인물의 비극이 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여기, 원초적인 아비가 있다. 수시로 아내와 자식들을 학대하며 살아가며 가족들의 모든 권리를 독점하는 아비. 아들은 이 아비를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와 누이와 힘을 합쳐 아비를 살해한다. 세상의 시선으로 보자면 패륜의 죄를 저지른 셈이다. 이 죄책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법을 거부하고 ‘나’만의 법을 만든다. 그리고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저 밑에 묻어두고 오로지 수치심을 느끼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주문을 외운다. 죄책감이란 약한 인간의 감정이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수치심을 느끼는 존재만이 참인간이고 강한 인간이며 초인이라고, 그렇게 초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문을 건다. 그리고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것이 있으면 그 분노를 해결한다. 분노를 일으킨 대상을 죽이는 것으로. 그렇게 ‘나’는 30년 동안 ‘이 세상과 혼자만의 전쟁을 벌’인다. ‘죽이고, 달아나서, 숨었다. 다시 죽이고, 달아나서, 숨’으며. 그러면서 아버지를 죽인 행위에 대해 자기합리화를 완성한다. ‘죽이는 게 최선이었다. 다만 후회가 되는 것은, 혼자 할 수도 있었던 일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연류시켰던 것뿐이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죄책감을 느끼며 살지 말고 수치스러운 삶을 수치스러워 하는 초인적 삶을 살자던 ‘나’에게 위기가 온다. ‘내’가 나가던 문화센터의 사무원인 은희 엄마를 죽이고 은희 아빠를 죽이던 과정에서 어린 은희를 죽인다. “제발 우리 딸만은 살려주세요.” 절규하던 은희 엄마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벌인 은희에 대한 살인은 저 밑에 묻어두었던 죄책감을 불러내는 계기가 된다. ‘살인 없이 살아온 평온한 삶’이 살아가고, 그러던 중 은희라는 이름을 가진 요양보호사를 만난다. 아마도 ‘내’가 상징적 질서를 떠나 상상계의 삶을 살게 된 것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순간이 아니라 이때부터이리라. 이때부터 ‘나’는 자신의 딸만은 살려달라는 은희 엄마의 약속을 지키며 살았고, 자신이 어린 은희를 맡아 키웠다는 상상에 자신을 맡기며 살았을 것이다. ““제발 우리 딸만은 살려주세요.”/은희 엄마는 울면서 사정했었다./ “알았어. 그건 걱정하지 마.”/지금까지는 약속을 지켰다. 나는 빈말을 일삼는 놈들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잊지 않기 위해 여기 다시 쓴다. 은희가 죽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나’ 자신이 했던 일을 전도시켜 상상계에 전적으로 자신을 맡긴 채 살아오던 ‘내’게 이러한 통제선이 무너지는 일이 생긴다. 바로 알츠하이머다. 은희 엄마와의 첫 번째 약속을 어기고 은희를 죽였던 ‘나’는 이 알츠하이머로 인해 또 한 번 은희 엄마와의 약속을 어기게 된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살인자의 기억법』은 아버지를 죽인 죄책감을 수치심으로 묻어두며 자신을 지탱했던 한 인간이 어린 아이를 살인한 후 이제는 아예 자기 자신을 잊고 상상 속에서 살아가다가 또 다른 은희의 출현과 알츠하이머라는 질병 때문에 그것마저 불가능해지는 이야기인 것이다. 죄책감을 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결국은 그 죄책감에 좌초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할까.

그런데 이때 문제는 뒤늦게 나타난 은희라는 존재이다. 요양보호사이며 그 특유의 친절함으로 모든 사람의 칭송을 받던 이 은희는, 소설적 상황을 종합해보면 ‘나’의 상상에 맞추어 딸 노릇을 해준 것이 되고, 나중에는 박주태에 협조해 ‘나’를 감시하던 인물이 된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나’의 분노를 일으켜 살해당한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는데, 이렇게까지 읽을 수 있는지는 확신하기 힘드나, 그렇다면 이 또 다른 은희는 ‘나’의 보험금을 노린 또 다른 악마적 존재일 수 있는 셈이다.

어쨌거나 『살인자의 기억법』은 수치스럽게 살지 않으려는 한 초인적 악마의 모험과 좌절의 드라마이기도 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끝내 상상의 세계 속에 자기를 맡겨 버린 연약한 한 인간의 자기처벌적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 연쇄살인법의 생존 방식에게서 우리 시대의 윤리를 읽어내보자고 하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할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존재를 통해 우리의 실존형식을 되짚어 보자고 한 것이 『살인자의 기억법』의 궁극적인 관심사라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일 수 있다. 타자의 시선에 얽매여 나를 잃지 말고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나 스스로만의 준거점에 갇히지 말라 하는 것. 다시말해 수치심과 죄책감 사이에서 살거나 아니면 정말 수치스럽게 살지 않으려면 어느 누구도 죄없이 살 수 없다는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가지고 살라는 것. 그리고 바로 이것이 『살인자의 기억법』이 ‘기법의 승리’만이 돋보이는 소설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진정한 주체적 결단의 길을 탐색한 소설이라 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이 글은 처음 씌어진 글이 아니고 최근 어느 잡지에 발표한 글이다. 김영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김영하와 동시대의 비평가라는 사실이 즐겁고 고맙고 하다. 비평가란 어떻게 보면 숙주가 있어야 사는 ‘벌레’와 같다. 그런데, 하, 나에겐, 김영하라는 숙주가 있는 것이다. 김영하의 소설에 대해 말하다 보면 어느덧 내가 말하고픈 것을 말하게 된다. 그리고 문득 말을 잃어 실어증에 빠지면 김영하의 또 다른 소설이 나에게 또 다른 말을 하게 한다. 최근의 한 동영상을 보니 소설가 김영하의 장래의 꿈은 ‘소설가’란다. 20년 후에도 30년 후에도 소설을 쓰고 있는 것, 그것이 그의 꿈이란다. 덕분에 나도 보다 현실적인 꿈이 하나 생겼다. 20년 후에도 30년 후에도 김영하의 소설을 읽고 말하면서 ‘늙은 비평가로 살아 가는 것’. 부디 김영하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