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으로 읽는 영화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과 『춘향전』

원작으로 읽는 영화 ;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과 『춘향전』

뒤늦게 <방자전>을 보았다. 봐야지, 봐야지 했지만 몇 번이나 미뤄두었던 영화였다. 실망하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워낙 좋은 소리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혹시 그 정도가 아니면 어떨까 하는 우려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방자전> 앞에서 망설였던 보다 큰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춘향전』 때문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 <방자전>은 우리의 고전 중에 고전 『춘향전』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춘향전』을 읽으면서 ‘뭐, 이렇게, 대단한 작품이, 어떻게, 그 시기에, 가능했던 거지’ 하며 혼란에 빠졌던 적이 있었더랬다. 『춘향전』은 춘향과 몽룡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신분을 넘는 즉 사회적으로 불가능한 사랑을 스스로 쟁취하는 춘향의 강력한 자아실현의 드라마이기도 하고, 또 당시의 썩을 대로 썩은 신분 사회라는 통곡의 벽 앞에서 말 그대로 통곡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이 거의 불가능했던 민중들의 애환과 분노와 열망을 내밀하게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 길지 않은 한 작품 안에 이 모든 것이 담겨 있으며, 『춘향전』은 그래서 위대한 고전이라 여러 번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춘향전』에는 그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맥락에서도 읽을 수 있다. 『춘향전』은, 『춘향전』 식의 제목을 붙여 비유하자면, <변학도전>일 수도 있고 또 <방자전>일 수도 있다. 비록 마초적으로 들릴 지는 몰라도 개인적인 소회를 좀 섞어 이야기하자면 『춘향전』에서 가장 비련의 주인공은 ‘변학도’이다. 변학도는 사실 다른 현감이 했던 일 그대로를 따라 했던 인물일 뿐이다. 그 시대의 법과 관습에 따라 기생인 춘향에게 점고와 숙청을 명했고 그걸 거부하자 벌을 주었을 뿐이다. 변학도는 현감에게 주어진 의무와 권리를 행사한 인물뿐인 것이다. 다만 변학도는 여타의 양반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당연하게 여겼던 양반사회가 양반 이외의 백성들에게는 얼마나 뼈아픈 고통과 분노와 원망을 낳고 있었는지를 몰랐고, 또 그러한 민중들의 고통과 분노 때문에 신분사회가 서서히 혁파되고 있었음을 몰랐던 인물일 뿐이다. 어떻게 보면 변학도는 너무 늦게 태어난 양반이었다. 그것 때문에 이전의 양반의 악행까지도 모두 뒤집어 쓰면 민중들의 분노의 함성이 한몸에 받아내야만 했고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어떤가. 이만 하면 『춘향전』은 ‘변학도전’으로 읽어도 무방하지 않은가. 변학도 외에 『춘향전』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이 있으니 그 인물은 다름아닌 방자다. 그런 의미에서 『춘향전』은 ‘방자전’으로 읽어도 무방할 정도 방자라는 인물은 압도적이다. 『춘향전』의 방자는, 어떤 면에서 보면 아감벤이 주목한 조수들(Gli aiutanti)에 가까운 존재이다. 방자는, 아감벤이 규정해 놓은 그대로, “어리석은 행동과 어린아이같은 짓만” 반복하고, “‘해충’이며, 심지어 때로는 ‘파렴치’하고 ‘음탕’”한 그런 인물이다. 방자는, 대부분의 조수형 인물들이 그러하듯, 다만 보통 사람들이 차마 드러내지 못한 욕망, 스스로에게도 고백하지 못한 욕망을 과잉의 형태로 거리낌없이 드러내며, 그러한 과잉의 욕망의 분출로 당시의 신분이라는 감옥 갇혀 사는 이들을 조소하고 조롱하며 냉소한다. 이렇듯 『춘향전』에서 방자는 압도적으로 생동적이고 외설적이고 그를 통해 그 시대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활달한 민중상을 구현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춘향전』을 ‘춘향전’이라는 이름 말고 ‘변학도전’이나 ‘방자전’의 이름으로 다시 쓰거나 영화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었던 참이었는데, 때마침 그런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이 그것. 당연히 봐야지, 했다. 그런데 순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나중에는 무슨 의무처럼 큰 짐을 다가왔다. 그러다가 때를 놓쳤고, 이제야 보게 된 셈이다.

<방자전>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외설적이었다. 감독이 김대우다 보니 당연하다 싶기도 했다. 김대우 감독이 누군가. <해적> <용병 이반> <반칙왕>의 감독이기도 하지만 <음란서생>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정사> 등을 만든 감독 아닌가. 뿐만 아니라 ‘방자’에 대한 해석도 예상치를 훨씬 웃돌았다. <방자전>에서 방자는 『춘향전』에서의 방자처럼 ‘조수’가 아니었다. 『방자전』에서 방자는 조수 정도가 아니라 모든 드라마와 사건을 이끄는 명실상부한 주인공이었다. 『방자전』의 ‘방자’는 다른 인물들이 상징적 질서의 감옥에 갇혀 차마 발설하지 못하는 담화들과 행위들을 대신 말해주고 행동에 옮겨주는 보조적 존재가 아니라 춘향을 두고 이몽룡과 대결하는 주인공이었다. 그런 점에서 『방자전』은 『춘향전』에 전혀 충실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자전>은 흥미로운 영화였다.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 이야기를 이몽룡과 성춘향, 그리고 방자 사이의 삼각관계로 전환시킨 것도 그러했고, 그 과정에서 이몽룡과 성춘향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를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학대하는 새디즘적-매저키스트적 관계로 전도시킨 것도 흥미진진했다. 또한 넘쳐나는 양반들 속에서 ‘튀기’(?) 위해 미담을 창조하기 위해 이몽룡이 춘향과 공모하여 춘향을 열녀로 위장하는 극적 구성도 꽤나 개연성이 있었고, 작품 중간 중간 오달수가 분한 ‘마 노인’이 알려주는 ‘작업의 기술’(?)도 재치가 넘쳤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방자의 춘향을 향한 사랑이 압도적이었다. 신분 상승을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마저도 쉽게 배신하는 춘향의 행복을 위해 방자는 서슴없이 그 희생양이 되어준다. 춘향이 신분이 올라가면 자신과 더 이상 맺어질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춘향의 신분 상승이라는 열망을 구현하기 위해 드라마에 자신의 전부를 내던진다. 즉 춘향의 삶을 아름다운 그것으로 만들기 위해 방자는 춘향의 삶이 아름답기 위해 필요한 모든 불순한 것과 더러운 것들을 치워주고 집어삼킨다. 사랑은 그러므로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사랑이란 누군가 아름답기 위해 누군가는 한없이 추해져야 하나 누군가가 너무 추해지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사랑이기도 하다. 이렇게 『방자전』은 방자, 춘향, 몽룡 사이의 전도된 관계를 틍해 사랑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깊은 통찰을 던진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방자전>전의 ‘방자’보다는 『춘향전』 속의 ‘방자’가 훨씬 더 생동적이며 예술적 통찰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춘향전』의 ‘방자’야말로 신분사회가 혁파되는 그 과도기적 상황 속에서 새로운 민중들의 열망과 원망과 분노를 한몸에 안고 민중들이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을 활달하게 표현해주는 인물이며, 그러한 방자의 형상이야말로 한국문학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개성적이고 외설적이며 활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히 당대의 현실적 상황에 좀더 밀착한 ‘방자’를 중심으로, 그러니까 『춘향전』의 ‘방자’에 훨씬 ‘근사(近似)한’ 인물로 다시 씌어진 『춘향전』 혹은 다시 만들어진 <방자전>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까.

<사족 하나> <방자전>은 군산대학교 출신의 영화배우 송새벽을 일약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게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기 전에 그저 잘 했겠지 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조금 소름이 돋았다. 류승범과 오정세, 그리고 심지어 오달수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어떤 면에서 그들을 압도하는 연기는 정말 감탄할 만했다. 이젠 군산대학교 졸업생 송새벽이 아니라 한 사람의 진정한 배우로 송새벽을 기억하게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