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계절』¹⁾을 읽으면 비밀이 생긴다

임규정: 철학과

『비밀의 계절』은 평소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재미있게 읽을 만하다. 일단 살인 사건으로 시작하는데 범인이 첫머리에 드러나 있다. 그렇다면 무언가 반전이 있거나 일상적인 구성은 아닐 터이다. 또한 이란성 쌍둥이의 모호한 애정과 동성애를 포함한 인간 군상의 복잡한 관계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두 권 850여 쪽이나 되는 분량에는 상류층, 식자층, 언론과 경찰 등의 사회 계층이 등장하여 자신들의 표리부동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그리스 문학을 전공한 작가는 그리스 철학을 근간으로 동·서양의 실존 인물과 실재 사상을 직접적으로 활용하였다. 이쯤 되니 작가가 스물여덟에 첫 작품으로 썼다는 이 작품은 스릴러물이기도 하고 애정물이기도 하며 심리물이면서 풍자적, 주지적이기까지 한 성격을 지녀 웬만한 독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인생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암흑의 균열 같은 ‘치명적인 결함’이 과연 문학 밖에도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내 삶의 치명적인 결함이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삶을 다채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병적인 집착, 바로 그것인 듯하다.

내 이야기다. 내가 가진 광기에 관한 이야기 하나.(1권, 14쪽)

‘나’는 암흑의 균열이 문학에만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인생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아마도 자신의 치명적인 결함 때문일 것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삶을 다채롭게 만들려는 집착이 자신을 암흑에 빠트렸다고 한다. 광기라고 일컬을 만한 그 일은 무엇이고 어떤 균열을 가져오는가? 독자는 궁금하다. 프롤로그에서는 심상하게 ‘나’를 포함한 네 친구가 자신들의 친구인 버니를 죽인 정경을 묘사한다. 그리고 1장으로 넘어와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명민한 독자는 암흑이 살인사건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균열의 무늬를 기대하며 책장을 넘긴다. 작가는 독자의 호기심을 세련되게 자극한다. 사실 위 인용문은 책 전체를 망라한다. 작가는 초입에서 작품 전체를 개관하지만 독자는 책을 다 읽기 전까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살인자들은 ‘나’를 포함하여 그리스어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다. 그들 모두에게 심각한 균열을 가져온 암흑의 시작은 디오니소스적 광란이라 할 수 있는 순수영혼의 갈구이다. 질서에 대한 강박을 지니고 있던 로마와 다르게 그리스인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부정하고 감정과 어둠과 야만을 부정하는 일이 어리석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시체같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대상이 예술작품에서는 자주 사색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그리스적 생각으로는 균형과 통제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 이상으로 아름답고 무서운 것은 없다’는 것이다. ‘영혼이 강력한 인간은 존재의 너울을 찢어발기고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인간만이 신이 자신을 해체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로써 거듭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순수영혼을 추구하는 디오니소스 제의인데 이들은 이를 감행한 것이다.²⁾

그런데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겼다는 말은 이들에게는 삶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그들은 비약(秘藥)을 통해 순수영혼을 갈구하다가 접신(接神)을 하고 그 상태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시골농부를 죽이게 된다. 그들 말을 믿자면 이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고라 할 수 있지만 공교롭게 제의에 참여하지 않았던 버니가 이 사고를 알게 되면서 나머지 친구들은 사색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버니를 어떻게 할 것인가? 죽인다면 어떻게 죽일 것인가? 그리스어 반의 리더격인 헨리는 동·서양의 사상뿐 아니라 일반 지식에도 정통하여 약리학부터 논리까지 다양한 사색을 통해 방법을 찾는다.

그것은 바로 ‘나’인 리처드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헨리는 리처드가 자신과 같은 점이 있다는 걸 알아보았다. 헨리는 생각만 하고 마음으로만 살던, 그래서 죽음과도 같았던 자신의 삶이 농부의 죽음 이후로 비로소 생각하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결정하며 사는 삶이 되었다고 한다. 리처드는 그 말을 들으며 끔찍하게도 자신 역시 버니의 죽음을 통해 심드렁했던 세상만사가 갑자기 총천연색 영화 같았고 그로 인한 번민이 불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 다음은 헨리가 리처드에게 하는 말이다.

“너는 힘과 쾌락의 분류(奔流³⁾)를 알고 있어. 비밀을 가진다는 것, 자기 손으로 세상을 다스리면서 산다는 것의 즐거움을 너도 알고 있어. 세상이 문득 넉넉해 보이던 순간을,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던 순간을 알고 있어.”(2권, 344쪽)

이 비밀은 문명화된 인간으로서 ‘균형과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어둠과 혼란이 지배하는 야만성이 이성을 누르고 승리한 사실이다. 원시적이고 감정적인 자기를 죽이고자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에게 비합리성이 내재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위협하기 때문이다. 지적인 수단이 높아질수록 자기 억압에 시달리게 되고 그러다가 말살하려 했던 충동과 화해하지 못하면 원시적 야만은 안에서 강화되어 스스로 폭발한다. 그 사례가 칼리굴라나 네로라 할 수 있다⁴⁾. 이 말은 그리스어 반의 지도교수 줄리안이 하는 말이다.

줄리안은 아리스토텔레스나 에트루리아인으로 비유된다. 이방인으로 아테네에서 학교만 남기고 떠나야 했던 아리스토텔레스나 그리스와 교류하다가 로마에 문화를 남기고 사라진 에트루리스를 생각하라. 교수 역시 헨리 등이 버니를 죽인 사실을 알고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헨리는 줄리안이 평소 가르침이나 그리스어의 특징인 행동, 즉 실용을 행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도망갔다고 본다. 아마도 그 때문에 헨리 자신은 당당히 죽음을 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헨리에게는 죽음과 삶이 동전의 양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리처드의 꿈에서도 헨리는 먼 별빛에서 온 유령으로 관자놀이에 총 맞은 자국이 있는 그대로 나타난다.

그리고 나머지 친구들은 사색(바람직한 생각만이 사색은 아니리라)의 방황이라 할 수 있는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자살을 시도하다 살아난 후 새 삶을 살기도 하며 원래 자신의 몫인 삶을 방기하거나 끈질기게 가던 길을 가기도 한다. 리처드는 홀로 대학에 남아 시릴 터너의 『복수자의 비극 』에 대해 논문을 쓴다. 『복수자의 비극 』은 주인공이 복수를 계획하고 한 치의 오류도 없이 그 계획을 실행한 다음 마침내 악행을 범한 자기 자신까지 단죄하는 복수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리처드는 이 논문을 쓰며 죄지은 자는 벌을 받지 않고 순진무구한 자는 자주 파멸을 맞곤 하는 그 세계가 좋다고 말한다.

첫 장에서 이야기의 전체를 개관했듯이 작가는 마지막에서 또 이야기의 주제를 고전에 갈무리해 두는 것 같다. 복수자는 헨리인가? 리처드는 첫 장에서 자신이 조금 관여되었다고 했지만 점점 자신이 직접 버니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복수자는 버니를 죽인 모두인가? 그들 모두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그렇다면 과연 누가 거듭난 것인가? 리처드의 꿈은 신전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신전들은 이미지에 불과했고 찰칵찰칵, 역사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리처드나 헨리, 둘 다 어느 곳에서도 행복하지 않다.

소설의 현실에서는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각자 짐을 짊어졌을 뿐이다. 비밀을 간직한 이들은 흩어졌다. 비밀의 힘은 언제까지 작용하는가? 원제는 비밀의 역사이고 수많은 장소와 인물이 명멸한다. 인류사도 비밀의 분류(奔流)로 흘러온 것은 아닌지, 작가는 그것을 말하려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물여덟, 서툰 나이에 전유하려던 지적 유희는 오히려 싱싱하게 남아 독자가 각주를 다는 수고를 더한다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지적하자면 이 작품은 트랜스 아방가르드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것을 넘어서려다가 원점으로 돌아간 미술처럼 이 책 역시 고전이 들어 있음을 숨기지 않으면서 당당히 그를 따르고 있다. 당대를 거스르며 역사와 전통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 뒷면에는 ‘매혹적인 그리스 비극의 재탄생’이라 되어 있고 타임스는 19세기 문학 특유의 결을 재현했다고 썼을 것이다.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남는 많은 질문들이 있다. 줄리안은 어디로 갔는지, 커밀라가 헨리를 죽음 이후까지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쌍둥이의 진실은 무엇인지, 프랜시스의 이성애적 봉합은 어떤 의미인지....... 읽을 때마다 또는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보는 것이 양서이고 좋은 독서는 한 권을 읽고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혼자 여러 번 읽으며 다른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라면 『비밀의 계절』 은 바로 그런 범주에 들 것이다. 따라서 이 서평은 되도록 스포일러가 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