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책 100

임 규 정(철학과 교수) 편

근현대 서양사에 있어 19세기는 격동의 시기였다. 1820년부터 1824년에 걸쳐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했고, 뒤이어 1829년부터 시작된 1830년 혁명은 부르주아 세력이 서유럽 귀족계급을 누르고 사회의 지배계층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1830년 혁명은 서구 유럽의 정치, 사회를 완전히 변화시켰는데, 특히 귀족 계급에 대항하는 혁명이 연달아 성공하면서 대중의 힘이 강해지고, 그러자 그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 체제 내에서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불만이 밖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업 혁명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놀라운 과학의 진보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그리고 충격적인 빈곤을 낳았다. 노동자의 빈곤을 통해 착취되는 엄청난 양의 자본이 자본가에게 흘러들어갔고, 이 때문에 노동자가 빈곤할수록 자본가가 부를 축적하는 형태의 경제 체계가 구축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럽 내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본가 계급에 대비되는, 시민 혁명을 통해서도 가난한 위치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프롤레타리아로서의 동질감, 혹은 그런 체제에 대한 분노가 모이면서 사회주의 열풍은 유럽 전역으로 휘몰아치게 된다.

이러한 의지와 분노가 모여, 1848년 혁명이 발생했다. 1848년은 비단 서구 역사뿐 아니라 세계 역사상으로도 매우 중요한 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명한 역사학자 홉스봄은 1848년을 기점으로 서구 역사가 혁명의 시대에서 자본의 시대로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판단에는 1848년 혁명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848년 혁명은 전무후무한 속도로 국경을 넘어, 브라질과 콜롬비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엄청난 규모의 세계 혁명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최초로, 사회주의자가 처음부터 전면에 나선 혁명이기도 했던 1848년 혁명은 1848년 2월 24일 프랑스 2월 혁명을 시작으로, 몇 주일만에 유럽 10개국에서 정부를 타도하는 혁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1848년이 그토록 중요한 해인 것은, 비단 1848년 혁명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2월 혁명이 발발하기 몇 시간 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간행된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체계적 틀을 마련하는 이 저서는, 1848년 혁명과 더불어 세계를 자본의 시대로 몰아가는 쌍두마차가 되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에 떠돌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

『공산당 선언』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시 1848년 즈음으로 돌아가보자. 1848년 혁명은 최초로 사회주의자가 처음부터 전면에 나선 혁명이었다. 비록 그 혁명이 진정한 공산주의 혁명을 표방했다고 하기는 어려우나, 그렇더라도 1848년 혁명을 사회주의자들이 앞서서 이끌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그 전에 유럽 사회에 공산주의로의 움직임이 있었음을 함축한다. 이러한 움직임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령”이라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 그것은 공산주의 운동이 아직 정식화되지도, 체계화되지도 않았음을, 그리고 당시 유럽에서 공산주의는 반정부 집단들을 향한 낙인의 일종으로 활용되고 있었음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 쪽이었든 간에, 그 시기의 공산주의는 이미 유럽에서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았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당 자체의 선언을 통해 공산주의가 유령 이상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컨대, 『공산당 선언』은 유령이었던 공산주의가 실체를 갖게 만드는 도구였던 셈이고,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선언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플랑드르어, 덴마크어 등 여섯 가지 언어로 발표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는 19세기의 부조리한 사회 구조, 요컨대 산업 혁명으로 인하여 전체 부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빈부의 격차가 극도로 심화되는, 그리하여 노동자들은 빈곤의 나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 시기의 경제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다. 공산주의의 이상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 어려운 21세기의 젊은 청춘들은 『공산당 선언』이 사회 운동을 위한 보편적인 선언문이라고 생각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선언은, 당시 격동기를 겪고 있던 유럽의 각 국가들에서 경제 구조가 어떻게 변화되고, 또 노동자들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있는지, 그리고 유령이라 폄하되던 공산주의 운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는지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담고 있다. 따라서, 굳이 공산주의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하더라도, 『공산당 선언』은 급변하던 19세기, 혁명의 시대를 지나던 유럽 사회에 대한 통찰이 담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읽을거리

『공산당 선언』에 대한 한국어 번역본이 이미 출판된 상태이니, 원어로 볼 수 없다면 국역본으로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길이가 길지 않으나, 선언문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논거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추가로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